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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아이센터 개원 7주년 (2007.3.15 에 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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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호원장 20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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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빨리 흐른다. 2007년4월3일이면 개원한지 7주년이다. 대학교수로 있었다면 7년마다 안식년이 1년씩 주어지니, 나도 외국연수를 나가든지, 대학병원을 잠시 쉬고 그동안 부족했던 논문을 정리하여 발표하면서 다음을 위한 재충전 기회로 삼을 수도 있는 한 해가 되었을 것이다.


1995년 2월부터 2년간의 미국유학을 시작으로 지금의 2007년 봄까지 12년여를 앞만 보고 정말 안쉬고 달려왔다. 그동안은 논문과 학회 발표, 의사들 속에서의 명예 추구가 나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것은 나를 키워주신 아버님과 미국유학 시절 지도교수님 영향이 컸다. 귀국한 뒤 대학교수로 3년간 재직하기도 했지만, 개업의로서 7년 재직한 기간은 그 이전에 겪지 못하던 여러가지 스트레스에 대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처음 비전아이센터를 개원할 때는 아주 큰 꿈을 품고서 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시작부터 어려운 점이 가로 막고 있었다. 비전아이센터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 점심을 먹기 힘들 정도로 바빴지만 과다한 초기 투자로 병원 경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동업의사와의 관계도 개원한지 얼마되지 않아 일찍 정리하고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좁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서로 알았던 사람인지라 아직도 예전의 동업의사에게는 무거운 마음이 남아 있다.


개원한지 2년여가 지났는 2002년 봄, 내가 그보다 3~4년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오던 ICL수술에 대한 한국식약청 승인이 났다. 그 이전까지는 라식수술이 안과의사들 최고 관심사였지만, 2002년5월4일부터는 한국안과의사들의 새로운 관심사로 ICL수술이 부각되었다. 그 시발점에 내가 서있었고, ICL수술로 한국안과분야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의과대학 동기동창의 컨설팅을 받아 2003년1월1일부터는 우리병원의 시스템을 100% 예약제와 수술시간, 외래진료시간 완전분리로 전격적으로 바꾸어서, 증가된 생산성과 집중도로 인해, 최고품질의 라식 검사와 수술을 국내 최저가로 공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라식수술 가격 폭락을 유발한다고 당시에 전국 안과의사들 비난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병원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든, 나의 절친한 친구이든,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수술을 결정했고, 또한 모두 동일한 가격에 진료와 수술을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고객들에게 동일하게 최선을 다해 검사와 수술을 했다. 추가 할인을 해주지 않는 것으로 인해 우리 정서상 지인들이나 단골고객들 중에 섭섭함을 호소해서 내 마음이 무거운 적도 있었지만, 나는 현재까지 이 원칙을 지켰고,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정도를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원의로 산다는 것은 진료와 수술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합리한 의료제도에 항의하며 끊임없이 싸우는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고, 하루하루를 병원운영에만 나의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야만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제 현재의 나를 바라보면, 지금이 내 인생 최고 정점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정점을 1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과 같은 컨디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평생 일과 스트레스 속에 살다가 갑자기 수직 내리막 길을 맞이하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실감이 덜 난다. 매일 밀린 일과 싸우느라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인가 보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평생 인생의 절정기만 있을 수 없고, 정상에 오르면 하산할 때가 온다는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진리를 생각하며, 내리막길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자의 여유가 아닐까 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10년뒤 개업 17주년때도 지금의 자신감을 그대로 가지고 삶을 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